나는 팔레스타인 광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볼품없는 가시나무였습니다. 아무리 곧게 자라려고 해도 태생이 곧게 자랄 수 없는 나무였죠. 그러던 어느 날 수염을 길게 기르고 눈이 쑥 들어간 양치기 어른이 나를 찾아왔습니다. 그분은 나를 자르더니 이내 당신의 지팡이로 쓰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의 감격과 기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답니다.

 

   나는 그의 손에 붙잡혀서 양 무리를 바른길로 인도하였고, 사나운 짐승을 쫓아냈고, 양치기 어른이 힘들어 지치면 그를 지지하고 부축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나는 내가 이렇게 다양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고 지친 몸으로 집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 나의 주인은 무엇을 보았는지 호렙산으로 오르고 계셨습니다. 나는 그의 다리가 되어 그분과 함께 산에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장면이 벌어졌습니다. 나와 비슷한 가시나무였는데 크고 거대한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지만, 나무는 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에서 천지를 진동할 만한 세미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을 해방하는 지팡이로 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는 모세의 손에 들려 있던 나를 땅에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나를 땅에 던지자 거짓말처럼 나는 뱀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모세에게 뱀의 꼬리를 잡으라고 하셨고, 모세 어른이 나를 잡으니, 나는 다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었습니다. 나를 잡고 있는 분은 분명히 모세 어른이었지만, 진짜 나를 붙들고 계신 분은 하나님의 손이었습니다. 나의 일생의 꿈은 하나님의 역사를 위하여 한 번이라도 쓰임 받는 것이었는데, 하나님은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팡이로 부르시면서 나를 능력의 지팡이로 거듭나게 하시어, 무한한 힘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나의 일생은 신나고 행복했습니다. 모세 어른이 나를 들어 홍해를 치니 홍해가 갈라졌고,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너갈 수 있었습니다. 나를 들어 반석을 치니 반석이 갈라지면서 생수가 터져 나와 목마른 백성들이 충분히 목을 축였습니다. 나는 모세 어른과 함께 이스라엘의 해방 역사를 이끄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거대한 역사의 동기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하나님께서는 나의 약함과 아픔을 아시고 나를 들어 놀랍게 쓰셨던 것입니다. 사실 나는 그렇게 쓰임 받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기다림만으로도 만족했는데 이렇게 현실로 이루어지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역사는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는 시방 주님의 사순절을 걷고 있습니다.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며 시대의 아픔을 보듬는 절기입니다. 주변을 살펴 억울하고 힘들고 소외받고 눈물 흘리는 이웃을 돌아봅시다. 신음하고 탄식하는 피조물도 어루만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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