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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회마을연구소(이하, 가교마)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내 인생의 동반자들을 여럿 만나게 해 주었다. 한 달에 한 번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해 보이는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모임은 여러 모양으로 지대한 도움을 준다. 혼자서는 다양한 분야의 좋은 책을 선택하기 어렵고, 좋은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균형 잡힌 시각을 갖는 것은 더욱 어렵다. 가교마에서는 가능하면 책의 저자를 초청한다. 책 소개와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하여 질문하고 저자의 직강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있다. 이즈음에서 그간 가교마에서 같이 읽은 책을 소개하고 느낀
그분과 함께 길을 걷다
김도일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2024.04.09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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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기독교」가 나를 자극하여 게으른 내가 지나 온 삶을 정리하던 중 잘 안 쓰는 128기가 바이트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를 열어보게 되었다. 거기에 보니 2016년 5월 21일 자 사진 중 강원도 화천이라고 쓴 사진 폴더가 나왔다. 그걸 열어보니 다 잊고 있던 친구들의 얼굴이며, 정겨운 통나무집이며, 뭐라고 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설교하는 내 모습 등이 사진에 찍혀있었다. “아니, 이게 뭐야? 여기에 주선애 교수님도 계시네? 무슨 공동체에서 일하시던 목사님도 계시네? 신양교회 교우들 몇도 보이네?” 혼자 중얼거리며 사진 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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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일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2024.03.18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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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후반부 인간관계는 점조직처럼 연결되어 있는데, 그 시작점에는 거의 다 한국일이라는 사람과 연관이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다른 욕심은 없는데, 사람에 대한 욕심은 많은 사람이다. 마치 작은 눈사람을 만들어 언덕에서 아래쪽으로 살살 굴렸을 때 그 눈사람이 점점 더 커지는 것처럼, 그의 인간관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더 커지고 단단해지고 있었다. 사역의 지평을 넓혀준 두 교수 그의 인간관계 그물에 내가 걸려들었던 계기는 장신대에서 기획처장을 하고 있을 때, 한 학생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게 된 사건과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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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일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2024.03.0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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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로 학생들과 같이 한 시간 중에 가장 보람있는 추억은 짧은 여행과 대화 가운데서 발견한 그들의 잠재력을 캐낸 것이다. 한국일 교수의 초청으로 선교학 트레블 세미나 클래스에 참여했을 때 만난 홍우림과의 대화가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그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과 학부를 졸업하고 바로 신대원과정을 밟았다. 그러고는 군대 복무를 마치고 기독교교육학으로 석사과정을 밟게 되었다. 그와의 의미있는 만남이 시작된 것은 나를 위해 조교로 함께 하겠다는 결정을 하고부터 였다. 그는 나의 조교로 지원하였고 나는 그를 조교로 맞아들였다. 그는 재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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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일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2024.02.13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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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은 발바닥으로 독일 개신교의 다양한 사역지를 둘러보며 즐거운 배움의 시간을 가진 해였다. 자세한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그때 종종 찍어 놓았던 사진이 전화기에 남아 있고, 사진을 보며 기억을 되살려 보면 즐거운 추억이 꽤 많이 있었던 것 같다. 돌아다니던 중, 독일에는 개신교 수녀원도 있었다. 그들은 결혼을 포기한 채 평생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다. 단출하면서도 깨끗한 수녀원은 손님을 맞을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조용한 수녀원, 기도와 봉사가 살아 있는 곳. 그곳에서 우리 일행은 하나님을 섬기는 다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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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일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2024.01.29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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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봄 학기를 마칠 무렵 나는 광나루로부터 이제 결정이 되었으니 서울로 올라오라는 전언을 받았다.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님께서 내게 목회를 같이하자는 여러 번의 초대를 보내셨고, 이번에는 정말 결정하고 올라오라고 하셨을 때, 나는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직에 지원했다. 하지만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직에 임용될 확률이 높지 않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당시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신학대학원 공부를 하고 각자의 전공을 따라 교수가 된 사람들 중 거의 99%가 장로회신학대학교 동문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전에 강사문, 성종현 교수님이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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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일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2024.01.15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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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여름에 만났던 윤리학 임성빈 교수와 1997년 여름에 만났던 기독교교육학의 양금희 교수는 장로회신학대에서의 오랜 교수 생활을 정리하며 은퇴예배를 드렸다. 어쩌다 보니 나는 그들의 마지막 채플에서 대표 기도를 맡게 되었다. 마치 일 년 뒤 나의 은퇴예배를 미리 준비라도 하려는 듯. 2023년 11월 28일 은퇴예배 기도문이다. “만세 전에 만물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 이 시간 우리의 예배를 받아주시고 흠향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래전 주님의 소중한 일군 임성빈, 양금희, 조성완, 변창욱 교수님을 장신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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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일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2023.12.20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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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예쁜 딸들, 수진과 예진 덕분에 내 가슴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샘솟는 게 어떤 느낌인지 날마다 배우고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첫딸 수진이가 갑자기 불덩이 같은 열이 올랐던 때가 기억난다. 그때 아내와 나는 갓 결혼해 수입도 없이 장모님의 아파트에 얹혀살고 있었다. 그런데 거실과 방 하나에 화장실이 하나뿐인 조그마한 아파트에 갑자기 수진이가 우리 식구로 찾아왔다. 하지만 새 생명을 얻은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핏덩이였던 수진의 온몸이 열로 펄펄 끓는 게 아닌가. 미국은 병원이 한국처럼 가까이 있는 경우가 드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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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일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2023.12.06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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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21일 CTS방송은 다음과 같은 기사를 세상에 알렸다. “제주지역 평신도 교육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연수기관인 제주교육선교연구원이 20일 개원 강연과 설명회를 개최했습니다. 제주교육선교연구원은 ‘원장으로 장로회신학대학교 김도일 교수가 부임하며, 교육선교를 위한 기독교교육 분야의 기초와 심화학습을 진행한다’고 밝혔습니다. 전체 강좌는 4학기제로 운영되며 오는 31일까지 연구원생을 모집합니다.” 어떤 일이든 일의 태동은 일정한 꿈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그때가 아마도 2012년 1월경이나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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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일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2023.11.15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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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교육학회에서 회원, 총무, 부회장 등의 여러 자리에서 동료 교수들과 같이 여러 학교를 섬기며 학문을 연구하고 발표도 하게 되었다. 내가 만 50이 되던 해에는 학회의 회장을 맡게 되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학회의 책무를 맡아 일할 수 있는 영광도 누렸다. 그러나 근 200명이나 되는 학회원들을 대표하여 학회를 섬기기 위해서는 도와줄 분들의 지원이 절실했다. 그래서 나는 목원대학교에서 가르치는 조은하 교수에게 총무로 섬겨주실 수 있는지를 물었고, 그는 고민 끝에 학회를 함께 섬기는 데 마음을 모아주었다.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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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일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2023.10.25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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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회신학대학교는 나에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소중한 기회의 문을 열어준 고마운 직장이다. 교수로서는 외국인학생지도교수, 학과장, 교육대학원장, 대외협력처장, 기획처장 등의 보직을 맡아 학생들과 즐겁게 동행할 수 있었고, 학교 밖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맡아 할 수 있도록 독려하여 주님 안에서 나의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게 했다. 어느 날 김중은 총장은 나에게 외국인 학생들을 지도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그 제안을 넙죽 받아들이기엔 내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꼈지만, 해외에서 이방인으로 살아본 경험이 꽤 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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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일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2023.10.04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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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2학기부터 나는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과 교수로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약 15년간의 미국 이민 생활과 교수로서 4년간 호남신학대의 시간을 뒤로한 후였다. 서울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가족은 창동에서 나는 광장동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임용 당시에는 서정운 총장과 기독교교육과의 선배 교수들(고용수, 임창복, 사미자, 양금희)이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리고 곧바로 나는 세부 전공 분야인 기독교교육사상사를 가르치게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마주한 학생들이 기독교교육과 99학번 학생들이었다. 40대 초반의 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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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일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2023.09.20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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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교수로서의 활동이 어느덧 5년 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하나님은 나를 장신대로 이끄셨고, 이 글을 쓰는 2023년 8월 현재, 지난 26년 동안 광나루에서 나의 삶을 충만하게 채워주셨다. 그러는 사이 아홉 살, 여섯 살로 한국에 처음 발붙였던 두 딸이 어느덧 열세 살, 열 살이 되었다. 그간 두 아이는 한국에서만 세 번의 이사와 세 번의 전학을 해야만 했고 한국 학교와 외국인학교를 경험하며 성장하게 되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경험한 학교는 광주 외국인학교였다. 이제 서울에서 학교를 정해야 했는데, 서울의 외국인학교는 학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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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일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2023.08.30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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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선교사와 같은 헌신의 마음에서 출발한 나의 교수 생활은 어느덧 8학기, 4년을 채우고 있었다. 양림동에서 보낸 교수 생활은 여러 권의 번역서와 논문을 낳았고, 미국 생활을 그리워하던 꼬맹이 예진이는 개성 넘치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됐으며, 의젓한 수진이는 재기발랄한 중학생으로 성장했다. 그러는 가운데 광나루의 장로회신학대학교는 나를 교수로 초빙하는 과정을 밟았다. 사실 나는 장로회신학대의 학부 출신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 신학 교수로 임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에 크게 기대하지 않은 지원이었다. 그러나 임용 절차에 따라 면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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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일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2023.08.16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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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신학대에서 만난 학생들과 다양한 교회에서 만난 교우들, 그리고 여유로운 성품의 교수들과의 사귐은 젊은 시절의 내 인생을 찬란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중 내가 만난 황승룡 총장님은 한국 예장통합 교단의 제2 신학교를 일구어낸 분이다. 학교의 모든 것이 서울 광나루에 있는 장로회신학대의 반 정도 규모였지만, 당시 호남신학대에 다니던 학생 중 여럿은 수도권에서 전라도까지 유학을 올 정도로 든든한 곳이었다. 무엇보다 호남지역은 기독교가 널리 전파되어 도시와 농어촌 지역에 골고루 교회가 세워져 있었고, 교회당마다 성도들로 넘쳐났다. 주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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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일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2023.07.26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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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15년 만에 돌아오는 모국이었다. 그러나 고심 끝에 미국으로 완전히 둥지를 옮기기로 작정하고 삶을 시작한 터라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기에, 나와 가족들에게는 정말 일생일대의 결정이자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게다가 이민 후 나는 단 한 번도 모국 방문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LA에서 사역자 생활을 시작했던 동양선교교회에서 성탄절 행사 때의 일이 생각난다. 당시 교회에서는 교사와 사역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모임 끝에 경품행사를 마련했었다. 그때 나는 무심코 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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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일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2023.07.11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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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15년 만에 모국으로 소환한 부르심은 영남신학대학교 권용근 교수의 연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프린스턴신학교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던 권 교수가 영남신대에서 기독교교육학 전공교수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전해온 것이다. 그러던 중 호남신학대학교 황승용 총장도 전화를 걸어왔다. 호남신대에 재직 중인 황영훈 교수의 소개로 전화한다며 “김보일 박사가 맞냐?”는 것이다. “저는 김보일이 아니고 김도일”이고, 기회가 되는대로 한국에 가면 찾아뵙겠노라 답했다. 그때가 1996년 늦봄 정도였을 것이다. 졸지에 두 학교의 연락을 받고 보니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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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일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2023.06.21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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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목회지인 롱아일랜드에서 우리 가족이 지낼 집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롱아일랜드의 집들이 대부분 훌륭하고 보기 좋아서 어떤 집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될 지경이었다. 그중에 싸이요셋이라는 동네 이층집을 살펴보게 되었다. 방도 많고 동네도 멋진데 집세마저 저렴했다. 교회에서 집세를 내주는 거였지만 생전 처음 내 이름으로 가져보는 집이었다. 그것도 이층집이라니. 집의 크기만으로도 우리 가족은 압도되었던 것 같다. 가족들 모두 그 집을 매우 좋아하고 기뻐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계약은 신중하게 고려해 보려고 했으나 이미 식구들은 그 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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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일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2023.06.07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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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과정을 시작하며, 단지 공부만 하는 삶이 주변의 지인들과 하나님께 죄송했다. 그래서 나는 참길교회를 개척하여 한동안 주말에는 사역을, 주중에는 공부하는 삶을 살았다. 공부만 해도 힘든데 개척은 뭐 하려 하냐며 걱정하던 선배들의 염려와 기도 덕분에 좋은 동역자를 만나고 즐겁게 사역하며 공부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패밀라 미첼 레그, 사라 리틀, 챨스 멜처트, 헨리 시몬스, 리 배럿과 같은 실력 있는 교수님들을 통해 깊은 학문의 길로 나를 이끄시는 바람에 나의 학업은 마치 날개를 단것처럼 창공을 날았다. 여기에 사족을 달자면 서부
그분과 함께 길을 걷다
김도일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2023.05.1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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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과정의 학생으로 선발되기 위해, 해당 학교에서 요구하는 토플 시험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점수가 나오지 않았다. 함께 공부하던 이 중에 영어학원에서 토플을 지도했던 김준식 전도사님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는 그런 시험을 치를 때 시간이 남으면 분명 함정에 빠진 거라 했다. 두 번째 토플에 임했지만, 문제는 해당 학교에서 내 점수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줄 것인가 였다. 나는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로 학교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는 자신이 박사과정생 선발 위원회의 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더니, 갑자기 “잠깐만요,
그분과 함께 길을 걷다
주간기독교
2023.05.04 1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