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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임투표는 12월 첫째 주일에 실시되었다. 나는 사임의사를 밝히고 있었던 시기라서 투표 결과에 대하여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일부 나를 반대하는 교인들에게 투표는 매우 중요한 기회가 되었다. 나를 불신임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당시 나는 그러한 분위기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비록 일부 교인이라고 할지라도 나의 목회에 대하여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고 또한 위임투표를 담임목사에 대한 불신임의 기회로 삼고자 했다는 사실은 목회에 있어서 매우 슬프고 부끄러운 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런
남미에서 만난 예수
홍인식 · 한국기독교연구소 소장
2020.12.15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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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8년 8월부터 현대교회 담임목사로 한국에서 첫 목회를 시작했다. 당시 나는 현대교회에 담임목사로 청빙 받았는데 그 의미가 위임목사와는 다르다는 것을 후일 경험하게 된다. 법적으로는 담임목사와 위임목사의 차이를 이해하고는 있었지만 목회 현장에서의 실질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 담임목사가 가지는 3년이라는 임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현대교회의 첫 목회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교인들은 나의 설교에 대하여 신선함을 맛보는 것 같았다. 설교는 물론 나의 성격 혹은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투명함과 솔직함이 그들
남미에서 만난 예수
홍인식 · 한국기독교연구소 소장
2020.12.02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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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셋째 주일, 현대교회 창립 32주년 기념예배와 동시에 담임목사 취임예배를 드렸다. 고등학교 시절 한국을 떠난 지 34년 만에 공식적으로 한국으로 영구 귀국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중간에 장로회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기 위하여 몇 년간 한국에서 지낸 적은 있지만 이렇게 공식적인 일을 하며 살게 된 것은 1974년 이민자로 한국을 떠난 지 34년 만이었다. 현대교회는 1976년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시작된 독특한 이력의 교회였다. 장로교 목사가 창립한 교회이면서도 중간에 감리교 목사도 시무했고 또 통합 교단에 가입되어 있
남미에서 만난 예수
홍인식 · 한국기독교연구소 소장
2020.11.2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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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고 즐거운 목회를 하면서도 나의 마음 구석에는 여전히 한국을 향한 그리움이 있었다. 한국 목회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고 있었다. 여러 곳에 지원서를 제출했다. 그러던 중 전남의 광주에 있는 한 교회에서 응답이 왔다. 대형교회였다. 그 지역에서 가장 큰 교회였으며 교인들로부터 존경받는 목사님이 30여 년 이상 목회한 곳이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고 지원서를 제출하였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내가 최종 후보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은퇴하신 당시 담임목사와 전화 통화를 하고 한국을 방문해서 그 교회에서 수요일 설교하기로 약속을 했다. 그
남미에서 만난 예수
홍인식 · 한국기독교연구소 소장/NCCK 인권센터 이사장
2020.11.1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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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 학교는 칠레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독교 학교로 1994년 8월 7일 대한예수교 장로교(통합) 선교사 허원구 목사(현 부산 장로교 신학대학 총장)에 의해 설립된 사립학교이다. 2006년 2월 최종남 목사 후임으로 칠레 영락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게 된 나는 자연스럽게 임마누엘 학교 이사장을 맡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임마누엘 학교 운영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임마누엘 학교 이사장으로서 내가 처음 해결해야 될 문제는 노동쟁의였다. 내가 이사장으로 부임하기 직전에 해임된 전 교장 선생
남미에서 만난 예수
홍인식 · 한국기독교연구소소장/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이사장
2020.11.1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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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당시 내가 칠레 영락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을 때 교인은 대략 장년 100여 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칠레 영락교회 교인들은 대부분이 자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의 의류 도매시장으로 알려져 있는 “파트로나토”(Patronato) 거리를 중심으로 의류 자영업자들이었다. 그런데 교인들의 사업장에서 판매되는 의류들은 칠레 국내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었다. 의류들은 중국 광저우시에서 생산되어 칠레로 수입되고 있었다. 그래서 대다수의 교인들은 일 년에 많게는 6차례 적게는 3차례 정도 중국을 방문하여
남미에서 만난 예수
홍인식 · 한국기독교연구소 소장/NCCK 인권센터 이사장
2020.10.20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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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쿠바로 올 수 있을까? 그런데 하나님은 미리 사람을 예비해 두셨다. 그 사람이 김성기 목사이다. 그는 내가 아르헨티나 신성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을 때 부교역자로서 나와 함께 2년 정도를 사역했던 신실한 사람이다. 내가 쿠바 선교사로 떠나가게 되자 그는 아르헨티나를 떠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염산교회에서 부목사로 재직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연락을 해왔다. 나의 후임으로 쿠바 선교사로 오고 싶다는 연락이었다. 김성기 목사는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사람 중에서도 가장 신실하고 신의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을 귀하게
남미에서 만난 예수
홍인식 · 순천중앙교회 담임목사
2020.10.1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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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차례 담임목사 청빙 과정을 거치면서 여러 교회의 목회를 통하여 목회와 신앙의 상업화 현상을 목격하고 직접 경험 할 수 있었다. 한국교회의 상업화 현상은 무엇보다도 목사와 교인(특히 당회)관계에서 드러난다. 담임목사는 더 이상 목회자가 아니라 교회를 운영하는 관리자 혹은 경영자의 역할을 감당한다. 그리고 당회 혹은 교인들은 고객으로 변모한다. 따라서 목회는 고객들의 기호를 중심으로 하는 사업이 될 수밖에 없다. 교회는 더 이상 목사에게 영적 지도자로서의 기능을 기대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교회를 성장발전 시키고 자신들의 삶을 위로하고
남미에서 만난 예수
홍인식
2020.10.07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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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이상 내 쿠바와 가족(아내와 작은 아들)이 사는 코스타리카를 왕복하며 살아왔다. 고단한 삶이었다, 더구나 쿠바에서의 삶은 상상했던 것만큼 낭만적이지 않았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라틴아메리카 지역이었지만 쿠바에서 살아가면서 경험한 문화 충격도 대단했다. 나름대로 쿠바 생활에 익숙해졌고 그리고 교수, 직원 그리고 학생들과 친해지고 잘 어울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친하게 지냈던 학생 호르헤 모레노(Jorge Moreno, 지금은 미국에서 목회하고 있다)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고 말했다
남미에서 만난 예수
홍인식 · 순천중앙교회 담임목사
2020.10.06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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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쿠바가 남긴 유산을 돌아본다.① 물질의 번영을 넘어서는 따뜻한 인간의 정이 흐르는 인간중심의 인간화 사회 새로운 인간은 누구인가? “진정한 혁명은 인간 내부에 있다. 이웃에게 탐욕을 부리는 늑대 같은 인간은 혁명가가 될 수 없다. 진정한 혁명가는 사랑이라는 위대한 감정을 존중하고 그에 따라 살아 움직이는 사랑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이제는 ‘새로운 인간’의 시대다. 쿠바는 아직도 경제발전이라는 개념을 인간의 개념에서 출발시키고 있다. ‘인간적인 경제Economia Humana’를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남미에서 만난 예수
홍인식 · 순천중앙교회 담임목사
2020.09.16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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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사회에서의 기독교교회 공산주의 국가에서 기독교교회가 존재하는 것이 가능할까? 나는 쿠바에서 만큼은 공산국가에서도 종교는 가능하고 또 매우 뛰어난 기능을 담당할 수 있다고 답변할 수 있다. 그리고 또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살아오면서 소위 종교의 자유를 누리면서 믿음을 고백하는 기독교인들의 신앙과 공산국가의 기독교인들이 고백하는 신앙사이에 진정성을 논한다고 하면 과연 어떤 사회가 진정성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내가 쿠바애서 살면서 만났던 기독교인들 중에서 나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사람은 두 사람이다. 한
남미에서 만난 예수
홍인식 · 순천중앙교회 담임목사
2020.09.09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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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톨 호(Victor Jo) 와의 만남 당시(2003년) 64세인 그는 사힐리(Sahili)의 작은 아버지이다. 그의 아버지는 서울 출신으로 1887년생이다. 그는 멕시코를 거쳐 1921년 쿠바에 처음으로 정착한다. Victor가 보여준 그의 아버지 신분증에는 아버지의 이름이 Jo, Y Pok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실 그의 성이 호시 인지 아니면 조 씨인지 불분명하다. Jo 는 영어로는 ‘조’라고 발음하지만 스페인어에서는 ‘호’라고 발음하기 때문이다. 하여간 빅톨 호(혹은 조, Victori Jo)는 혁명이 일어난 후 얼마 지나
남미에서 만난 예수
홍인식 순천중앙교회 담임목사
2020.09.02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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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담그기 쿠바에서 살아가면서 나는 모든 것을 혼자의 힘으로 해결해야만 했다. 특히 한국 음식을 마련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치의 경우가 그렇다. 시장으로 가서 필요한 몇 가지 채소들을 샀다. 내 생애 처음으로 만들어 보는 김치, 양배추 김치지만 기대가 된다. 어떤 맛일까? 김치를 담갔다. 잘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중에 보니 그것은 생각뿐이었다. 며칠 후 정말 맛이 없어서 도저히 먹을 수 없어서 아깝지만 그대로 버릴 수밖에 없었다. 쿠바의 불편한 교통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자전거였
남미에서 만난 예수
홍인식 · 순천중앙교회 담임목사
2020.08.26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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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서의 교통문제 쿠바에서의 이동을 위한 교통수단의 확보는 큰 문제이다. 교통기관의 부족으로 사람들은 여행하기 위해서는 오래 전부터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달러로 교통비를 지불하는 외국인들은 제한을 받지 않는다. 정부가 여행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교통수단의 부족으로 인하여 지방 여행이 수월하지 않다. 지방 여행뿐만 아니라 시내교통도 모자라서 많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도 한다. 나는 주로 내가 일하고 있는 마탄사스에서 수도 하바나로 자주 출장을 가야했다. 내가 주로 사용하는 교통수단은 고속
남미에서 만난 예수
홍인식 · 순천중앙교회 담임목사
2020.08.19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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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살다 스페인어로 믿음은 FE(faith, 훼)라고 한다. 그들은 믿음을 가져야 쿠바에서 살 수 있다고 늘 말한다. 맞는 말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믿음을 가져야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 말은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F는 familia(가족)에서 따온 것이고 E는 extranjero(외국의)에서 따온 합성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FE는 믿음이지만 감추어진 그리고 해학적인 의미로서 ‘외국에 있는 가족’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외국에 가족이 있어서 가끔씩 부쳐오는 달러가 있어야 살 수 있다는 자조적인 표현
남미에서 만난 예수
홍인식 · 순천중앙교회 담임목사
2020.08.05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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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8월 20일, 코스타리카의 수도 산호세 공항에서 쿠바 국영 비행기에 탑승했다. 약 2시간 30분 정도의 비행 끝에 쿠바의 수도 하바나 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에는 학교 사무를 도맡아 하는 모라이마 곤살레스(Moraima Gonzalez) 여사가 나와 있었다. 학교에서 보내준 차를 타고 곧 바로 하바나 공항에서 쿠바 개신교 신학대학(SET Seminario Evngelico de Teologia)으로 향했다. SET 대학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하바나에서 동쪽으로 약 100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마탄사스(Matanzas)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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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식 순천중앙교회 담임목사
2020.07.29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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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교회를 떠나다 쿠바를 다녀 온 후 신성교회를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그 준비 중의 하나가 선교비를 마련하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미국 마이애미 한인 장로교회가 수년전부터 쿠바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 후예들을 위한 선교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 나는 마이애미 한인 장로교회 사무실로 전화를 하였다. 수화기 건너편에서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아르헨티나 신성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홍인식 목사라고 신분을 밝혔다. 그러자 대뜸 “인식이 형?”이라는 대답이 들려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너무 놀라서 “누구니?”
남미에서 만난 예수
홍인식 · 순천중앙교회 담임목사
2020.07.1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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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시간의 비행을 거쳐 하바나 공항에 도착한 것은 2002년 9월 16일 오후 4시 30분경이었다. 공항 내부에서 공항 직원이 종교비자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다. 입국 심사대를 무사히 통과하여 드디어 쿠바로 들어섰다. 입국 공항은 초라하였고 입국 심사를 하는 군인의 질문은 까다로웠다. 특히 방문 목적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묻는다. 내 경우에는 종교비자로 입국하기에 매우 간단하고 의례적인 질문만 하고 통과하도록 해 주었다. 특히 내가 강의하고자 하는 대학은 쿠바에서 유명한 곳으로서 모든 출입국 관리 직원들도 알고 있는 학교다. 그래서
남미에서 만난 예수
홍인식 · 순천중앙교회 담임목사
2020.07.0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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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신성교회에서의 목회는 점차 안정되어 가고 있었다. 이세뎃 대학에서의 강의도 순조롭게 이루어졌고 박사학위 논문은 카이로스 출판사에서 책으로 엮어 출판해 주었다. 한편 나는 해방신학의 관점에서 꾸준히 연구를 하고 있었고 이세뎃 교수로서 짜코(Chaco) 지역의 토착민 민중성서 공부도 계속하고 있었다. 나는 성공적이고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떠나라!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그 어떤 것이 안정된 삶을 흔들어 놓기 시작했다. 처음의 바람은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약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리고 삶의 안정을 누리면
남미에서 만난 예수
홍인식
2020.07.0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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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논문을 완성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보니노 박사와 시작한 논문 작성이 약 2년 정도 흘렀다. 그런데 논문 작성하는 일에 전혀 진전이 없었다. 나는 지치기 시작했고 희망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박사 공부에 대한 흥미도 점차 잃어버리고 신성교회 목회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참고서적 등도 읽지 않았고 더욱이 2~3개월 글을 전혀 쓰지 않는 일도 발생하였다. 힘들었다. 그리고 나름 합리적인 변명 거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박사가 아닌 목사”로만 살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목사면 충분하지 박사를 원하는 것은 일종의 교만이며 욕
남미에서 만난 예수
홍인식
2020.06.24 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