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 후 시가에서 생활할 때 참으로 낯선 경험을 했다. 유학 중에 한 결혼이었기에 방학을 맞아 한국에 들어오면 주로 시가살이를 했다. 한 젊은 작가가 쓴 웹툰 「며느라기」에서처럼, 에게처음 며느리가 된 여자들은 당연히 시가 어른들에게 잘 보이려는 ‘시기’가 있다. 연로하신 시어머님을 돕는 차원에서 자원을 한 집안일이지만, 점점 내 일만 늘어갔다. 남편은 일하지 않았다. 둘 다 학생이고 학기 내 고생하다 들어온 것이건만, 왜 남편은 쉬어야 하고 나는 일해야 하지? 그래도 몸 건강하고 젊은 상황이니 투덜거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첫 아
기독교 ‘Her’story
백소영 교수/강남대학교
2021.12.20 10:09
-
“너 아직도 교회에 다니니?” 성평등 운동에 참여하며 같이 활동하던 친구나 지인들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면서 상처받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찾아오는 신앙인 청년들이 있다. 아무리 설명하려 해도 자신의 페미니스트 동료들은 기독교 신앙을 가진 자신을 무조건 종속적이고 굴종적인 시스템의 노예인 양 대한다는 거다. 물론 세속 사상으로서의 페미니즘 스펙트럼 안에는 무신론적 주장도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사람이 신자일 수도 무신론자일 수도 있는 것처럼, 특정한 사상을 믿고 주장하는 것과 신앙이 반드시 일치되거나 반대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 ‘Her’story
백소영 교수/강남대학교
2021.12.14 14:52
-
“여자는, 온전한 인간이 아닌가요?” 이런 질문을 21세기, 그것도 젊은 여성 신자들에게 듣게 될 줄이야! 2005년 처음 대학 강단에 섰던 나는 기가 막혔다. 그 무렵의 나는 전업 육아의 배치와 교수자 사이를 저글링해가는 삶을 개인기로 버티고 있었다. 하긴 ‘여성학의 메카’ 이화여대에서 대학 4년 대학원 2년 합하여 6년을 페미니즘으로 무장하고도, 심지어 석사학위 논문으로 관계적 상호성을 새로운 기독교적 덕목으로 제시하는 페미니스트 시각의 글을 썼음에도, 나 역시 망설인 시간이 길었다. 이론보다 더 무서운 것이 교리 혹은 신앙 훈
기독교 ‘Her’story
백소영 교수/강남대학교
2021.12.02 19:55
-
‘황득순’ 이후,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인 삶의 방식으로 “나야 뭐,”하며 양보하고 희생하고 인내하고 견뎌온 어머니들의 세대가 전반적으로 끝난 것은 어느 시점일까? 집마다 개화의 속도가 다르고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달랐듯이, 여성의 지위나 권위에 대한 전통적 사고와 습속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역시 모든 한국인이 ‘짠’하고 일시에 변화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개인적 경험이나 사회학적 성찰을 종합하며 말한다면 대략 1980년대 후반부 즈음에 가시적인 변화가 느껴졌다. 그러니까 내가 대학 생활을 통과하던 즈음이다. 여전
기독교 ‘Her’story
백소영 교수/강남대학교
2021.11.24 15:13
-
전밀라와 최덕지 이후에 어찌 기독교 여성 인물이 없으랴. 여전히 제도나 조건은 여성에게 유리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해방 이후에는 많은 여성 지도자들이 교단마다 배출되었다. 그런데 난 이즈음에서 인물별로 기독교 여성을 불러오는 작업을 그치려 한다. 가장 큰 이유는 비교적 최근의 인물들이기에 자료 접근성이 쉽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아직 생존해 있는 인물들이 많기에 그 생애사를 ‘역사’라는 관점, 즉 되돌아 성찰하는 학문적 시각에서는 평가하기 이르다고 여겨서이다. 어쩌면 대부분 내가 이렇게 저렇게 관계된 분들이 많기에 “나는 왜 빼느냐
기독교 ‘Her’story
백소영 교수/강남대학교
2021.11.17 10:26
-
감리교단의 전밀라가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은 1955년 3월의 일이었고, 최덕지가 평양여자고등성경학교 동문 김영숙, 김소갑숙과 함께 목사안수를 받은 것은 같은 해 5월이었다. 그러니까 굳이 말하자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목사는 전밀라다. 제도적 안수를 놓고 보면 2개월 뒤였겠지만, 최덕지는 이미 1951년 ‘명예목사’로 추대된 바 있다. 당시 장로교단에서는 교회법상으로 여성 목사 안수가 불가했으나, 신앙의 이름으로 신사참배 반대 운동을 전개하고 오랜 투옥 생활을 견뎌낸 “승리의 종”으로 평가되어, ‘여성’이 아닌 ‘최덕지’에게 수여하
기독교 ‘Her’story
백소영 교수/강남대학교
2021.10.28 08:45
-
가부장제 사회에서 나고 자란 딸이 아버지와 동일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근대 정신분석학 이론에서 어린 딸은 아버지를 상대로 어머니와 연적 감정을 갖게 된다는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말한다. 한편, 생물학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어머니와 동일시를 하게 되는 딸들이 많은 까닭에 가부장적 전제를 내면화한 딸들은 순종적 여성상으로 길러진다는 페미니스트들의 비판 이론도 있다. 오히려 동성이라는 이점 때문에 어머니와 딸의 관계가 훨씬 더 안정적이고 인격이나 도덕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이론도 있고, 유아의 가장 초기 발달 단계의 주체화 과정에서
기독교 ‘Her’story
백소영 교수/강남대학교
2021.10.20 09:59
-
한 인간으로서 나혜석을 변호할 생각은 없다. 그녀가 선택한 삶은 다분히 자기중심적이었고 공개적 설명도 모순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인간이 이기적인 본성을 가지는 법이며 더구나 우리나라 초기의 ‘근대 여성’이었던 그녀가 남다른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이해가 된다. 그랬다면 적어도 자기 안에서는 주장에 일관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혹 변했다면 생각이 바뀐 부분에 대해서도 끄덕일 논리가 존재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혼에 즈음하여 그녀가 공개적으로 밝힌 변호를 읽다 보면 고개를 갸우뚱할 구석이 꽤 많았다. 예를 들면, 모성에 대
기독교 ‘Her’story
백소영 교수/강남대학교
2021.10.15 10:18
-
“나도 꽃으로 살고 있소. 다만, 나는 불꽃이요.” 시나리오나 연기력, 완성도 모두 수작이었다고 생각하는 최근 드라마 에서 여주인공 애신의 대사이다. 당대 명망 있는 사대부 가문의 영애로 평생 수나 놓으며 꽃처럼 살 수 있었을 텐데, 남자로 변복을 하고 항일운동 저격수로 활동하는 그녀가 위태롭고 안타까워 애인이 건넨 걱정에 “그렇게 환하게 뜨거웠다가 지려 하오. 불꽃으로. 죽는 것은 두려우나, 난 그리 선택했소.” 라고 답한다. 이 드라마에 환호한 젊은 세대 여성들은 페미니스트 운동을 전개하는 자신들의 홍보문구에 애
기독교 ‘Her’story
백소영 교수/강남대학교
2021.10.06 09:22
-
“기올병원? 기얼?”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버지를 따라 산책이나 수련회 장소 답사에 자주 동행했던 나는 가족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친할머니가 결혼 전 평양의 한 기독교병원 간호사이셨다는 이야기를 하시던 중에 병원 이름이 나왔는데 얼른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올’은 아닌 거 같고 그럼 ‘얼’인가? 장소명이 아니라면 의미를 담았겠지 싶어 갸우뚱 추측하다가 이어지는 할머니의 결혼 이야기가 더 흥미로워 그냥 흘려 지나쳤다. 그 이름을 정확하게 알게 된 것은 한참 지나 한국 교회사를 배우면서였다. 평양에 세워진 최
기독교 ‘Her’story
백소영 교수/강남대학교
2021.09.27 14:05
-
“세례받던 날은 내 인생의 가장 기쁜 날이었다. 우리 조선 여자들은 몇천 년 동안을 남자들의 압박 아래서 성명이 없이 살았다. 만일 우리 조선에 예수의 빛이 비치지 않았다면 조선의 여성 모임이 오늘 이만치도 발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바로 말하면 조선 여자의 자유 운동은 그리스도의 빛이 우리 반도에 비추이던 날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김셔커스 “은혜만흔 나의 생활” 『승리의 생활』 조선기독교창문사, 1927) 점동이가 에스더가 되어 전문의사요 한 개인으로서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은(지난호 참조) 다 기독교인이 된 ‘덕분
기독교 ‘Her’story
백소영 교수/강남대학교
2021.09.22 18:20
-
《한 사람의 힘 The Power of One》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인종차별이 심각하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백인 아이가 경험하는 세상과 사람들 이야기였다. 영국계 소년이었지만 아프리카 줄루 부족 출신 유모와 정서적 유대가 깊었던 PK는 어려서 부모님을 모두 여의고 유모와도 헤어져 험난한 일들을 겪는다. 독일계 백인들이 주류인 기숙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영국인(독일의 적국)이라는 이유로 집단 린치를 당했고, 독일이 패전하자 자신의 보호자였던 독일계 교수님과 함께 포로수용소에서 지내기도 했다. 다 똑같은 사람인데 피부색으로
기독교 ‘Her’story
백소영 교수/강남대학교
2021.09.08 09:55
-
“당신이 습관적으로 탐닉하는 백일몽은 어지러운 마음의 상태를 야기할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평범한 일들이 당신에게 단조롭고 무익하게 보이는 만큼 그에 비례하여, 당신은 그런 일에 부적합해질 것이며 다른 어떤 것에도 적합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문학은 여자의 일생의 사업일 수가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됩니다. 여자가 해야 할 의무를 다하고 있을수록, 재예(才藝)로써든 오락으로써든 간에, 문학을 할 여가는 더 적어질 것입니다. 당신은 아직 그러한 의무에 부름을 받지 않았는데, 부름을 받게 될 때 당신은 명성에 대한 열망이 줄어들 것
기독교 ‘Her’story
백소영 교수/강남대학교
2021.09.01 09:33
-
“하나님은 페미니스트셨나요?” 이 무슨 황당한 질문인가. ‘페미니즘’이라는 말 자체는 근대 시민권 운동에서 배제되었던 서구 여권 운동가들의 투쟁 현장에서 생겨난 것인데, 태초 이전에도 계셨던 하나님께서 어찌 ‘페미니스트’이실 수 있나. 하지만 간절한 눈빛으로 질문한 스무 살 교회 자매의 저 질문은 나에게 이렇게 ‘번역’되어 전달되었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남녀를 차별하지 않으셨지요? 지으실 때부터 평등하게 창조하신 거죠?” 물론 나의 답은 ‘예스’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페미니스트이시다’라는 말이다. 이 역시 번역해서 들어주었으면
기독교 ‘Her’story
백소영 교수/강남대학교
2021.08.25 10:45
-
“나는 비난을 받고 모욕을 당했네/주여, 나는 비난을 받고 모욕을 당했네/주여, 나는 비난을 받고 모욕을 당했네/나는 당신이 계신지 모르겠네/그러나 나는 내 종교를 버리지 않았네/주여, 난 내 종교를 버리지 않았네/천상의 면류관을 쓸 때까지” (Margaret Walker, 『Jubilee』 New York: Bantam Books, 1976, 60) 자기 증조모의 이야기를 소설로 담은 마가렛 워커는 남부 백인의 대저택에서 끊임없는 노동을 하면서도 신앙을 붙잡았던 할머니의 노래를 이렇게 기록한다. 우리가 흔히 ‘흑인 영가’라고 부르
기독교 ‘Her’story
백소영 교수/강남대학교
2021.08.17 09:17
-
얼마 전 매우 인상적인 해외 기사가 한 편 소개되었다. 에리카 터커라는 한 젊은이의 지극히 개인적인 페이스북 게시글이었는데, 여러 매체에서 퍼 나른 덕분에 알게 된 사연이다. 미국 앨라바마 주 버밍햄에 사는 94세 흑인 할머니가 결혼 70여 년이 지나, 그것도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안 계신데 ‘나홀로’ 웨딩드레스를 입고 즐거워하셨단다. 할머님의 성함은 마사 터커! 최근 손녀 에리카랑 영화를 보다가 영화 속 여주인공이 눈부신 웨딩드레스를 입은 장면에 마냥 부러워하며 결혼 당시 경험을 나누셨다는 거다. 1950년대 초반에 흑인은 웨딩드
기독교 ‘Her’story
백소영 교수/강남대학교
2021.08.03 09:23
-
“남자의 힘은 활동적이고 진보적이고 방어적인 것이다. 남자는 뛰어나게 행하는 자이며 창조하는 자요 발견하는 자, 방어하는 자이다. 그의 지성은 사색과 발명을 위한 것이다. … 그러나 여자의 힘은 지배를 위한 것이나 투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냥한 처리와 조정과 결정을 위한 것이다. … 여자의 위대한 역할은 칭찬이다. 여자는 경쟁에 참여하는 적이 없지만, 결코 잘못하는 일 없이 경쟁의 승자를 판단한다. 여자는, 그녀에게 주어진 역할과 장소에 의해, 모든 위험과 유혹으로부터 보호된다. 남자는 열린 세상에서 거친 일을 하느라 모든 위험
기독교 ‘Her’story
백소영 교수/강남대학교
2021.07.28 11:04
-
세일럼 소녀들의 조바심과 불안감에는 어느 정도 사회 변동의 요인도 작용했을 거다. 주로 가족 단위로 이주해온 초기 청교도 젊은이들이 자녀들을 낳고 그 자녀들이 다시 가정을 이룰 만큼 성장한 무렵의 뉴잉글랜드는 서서히 결혼 적령기의 남녀 비율이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위 ‘개척자(프론티어)’가 되어 서부로 이동하는 젊은 남자들이 증가하면서 동부의 ‘기독교적’ 마을에는 여성의 성비가 훨씬 더 높아졌다. 처녀들만이 아니다. 험난한 환경에서 남편을 잃은 젊은 과부들도 속출하였다.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자들이 직면한 종교적 상황과는
기독교 ‘Her’story
백소영 교수/강남대학교
2021.07.21 09:53
-
척박하고 외로운 땅에서, 더구나 본토에서 쫓겨온 사람들끼리 신음도 기쁨도 함께 나누며 평화롭게 살았으면 오죽 좋았을까. 무늬만 종교개혁이었던 영국 국교회의 위계적이고 강압적인 의례에 저항하며, 자유로운 신앙을 외치던 분리파·독립파 개혁신앙인이었는데…. 1692년 뉴잉글랜드의 작은 마을 세일럼(Salem)에서 있었던 ‘마녀재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니, 안타까움이 크다. ‘마녀’라 하여 여자들만 마녀로 몰린 사건은 아니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무려 140명이 기소되었다. 그중 열아홉 명이 마녀 판결을 받고 교수형을 당했다. 한 사
기독교 ‘Her’story
백소영 교수/강남대학교
2021.07.13 10:26
-
‘신음하는 케이크’, ‘신음하는 맥주’라니!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케이크나 맥주가 생명력이나 감정이 있어 신음할 리는 만무하고. 게다가 음식 종류가 케이크와 맥주이고 보니 왠지 신음과는 좀 거리가 먼 ‘즐거운’ 음식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것은 북아메리카에 정착했던 초기 이주 여성들의 출산 정황과 긴밀하게 연결된 음식 문화이다. 전통 사회에서는 노동력과 직결되는 문제라서 다산이 흔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북아메리카 초기 이주민들의 경우는 더 절실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창조주의 말씀이 다른 어느 기독교 집단보다도 간절하게
기독교 ‘Her’story
백소영 교수/강남대학교
2021.07.08 0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