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샬렘하우스 벽에 그려진 그림
◇ 샬렘하우스 벽에 그려진 그림

 

   「주간기독교」가 나를 자극하여 게으른 내가 지나 온 삶을 정리하던 중 잘 안 쓰는 128기가 바이트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를 열어보게 되었다. 거기에 보니 2016년 5월 21일 자 사진 중 강원도 화천이라고 쓴 사진 폴더가 나왔다. 그걸 열어보니 다 잊고 있던 친구들의 얼굴이며, 정겨운 통나무집이며, 뭐라고 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설교하는 내 모습 등이 사진에 찍혀있었다. “아니, 이게 뭐야? 여기에 주선애 교수님도 계시네? 무슨 공동체에서 일하시던 목사님도 계시네? 신양교회 교우들 몇도 보이네?” 혼자 중얼거리며 사진 폴더를 살피다 보니 아무래도 글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이 2024년 3월 8일이니 벌써 얼추 8년이 지난 일이었다. 세월도 참 빠르지. 지금도 늙은 건 아니지만 그땐 나도 참 젊었다. 주 교수님도 참 예쁘시다. 장로님 권사님들도 젊으시다.

   샬렘하우스는 탈북자 자녀들을 데려다 남한에서 사는 법을 가르치고 다른 이들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기독교 정신을 심어주겠다는 일념으로 주 교수님과 차정규 목사님의 결심으로 생긴 작은 집이다. 본래는 주 교수님이 화천에 기도원이나 수양관 같은 것을 해 보려고 몇천 평 땅을 구입해서 갖고 있던 건데, 거기서 사역을 하겠다는 사람이 나서지 않았고 주 교수님 입장에서도 아무에게나 소중한 땅을 맡기고 싶지 않아 갖고 계시다가 당신이 제일 신뢰하고 사랑하던 장신대 기독교교육과 제자 차정규 목사에게 맡기고자 하셨다. 그래서 아래 보이는 소박한 통나무집을 지어 그 집을 ‘샬렘하우스’라 명명하고 그날 설립 예배 비슷한 걸 했다. 하나님 앞에 “주님, 그저 탈북자 자녀 몇 명이라도 좋으니 이 집을 통해 청소년들이 남한에서 잘 정착하기를 소망합니다”라고 기도하며 시작한 사역이다.

 

◇ 샬렘하우스 앞에서
◇ 샬렘하우스 앞에서

 

   화천은 아직도 매우 추운 땅이다. 군부대가 도처에 있고 주위에 도도히 흐르는 하천도 종종 있었다. 차 목사와 한두 번 화천에 가본 적이 있었다. 복숭아도 길가에서 사 먹고 옥수수도 사 먹을 것 같다. 그는 나에게 인간적인 사랑의 제스처를 종종 하며 나와 진정한 친구가 되기를 소망한다는 몸짓을 하였다. 왜 주 교수가 차 목사를 그리 신뢰하는지 세월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다.

   2015년 5월 21일에 나는 그가 산으로 올라오는 모습을 핸드폰 사진기에 담았다. 그는 소박한 가방을 들고 아무것도 갖추어져 있지 않은 샬렘하우스로 올라왔다. 그리고 몇 명의 교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자고 했고 나는 그의 부탁으로 무슨 주제를 잡아 설교를 했다. 막상 집에 들어가 보니 겉에서 보는 것보다는 훨씬 아늑하고 건강하게 느껴지는 나무집이었다. 그날 주선애 교수님도 같이 하셨다. 우리는 하나님께 소박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찬송하며 하나님께 그 집을 드렸다.

 

◇ 샬렘하우스로 올라가는 차정규 목사
◇ 샬렘하우스로 올라가는 차정규 목사

 

   차 목사는 왜 샬렘하우스라는 이름이 붙혀졌는지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 집에 드나드는 탈북자 자녀들과 그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사람들이 진정한 평화를 느끼고 나누는 삶을 살기를 소망하는 이름이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날 나는 차 목사의 권유로 하룻밤 묶고 가기로 했다. 그러나 5월인데도 아직 기온이 차가웠고 방바닥은 자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는 집 밖으로 나를 인도하더니 구들 안으로 나무를 집어넣어 불을 지피게 되면 아마 뜨거워서 잠을 자기 힘들 거라고 하였다. 그의 말이 맞았다. 구들장에서 잠을 자본 것이 언제던가? 나는 그와 즐거운 마음으로 나무를 구들 안으로 집어넣고 신나게 고구마도 굽고 나무를 때서 뜨끈뜨끈한 밤을 지낼 수 있었다. 차 목사가 설명하기를 이 구들장은 자신의 오랜 친구 김준봉 교수가 고안한 것이고 그는 한국 구들장의 전도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소중한 친구라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그가 현재 신림신양교회의 유리로 만든 본당을 설계한 건축사였음이 다시금 생각났다. 김 교수는 자신의 친구가 목사로서 사역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이 전공한 건축설계사로서의 은사를 친구를 위해 사용한 소중한 분이었다. 차 목사는 곁에 진실한 친구가 참 많은 사람이었다. 지나고 보니 그날은 참으로 행복한 하루였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때 샬렘하우스 안에서 잠시 드렸던 예배가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느끼게 된다. 이미 별세하신 주 교수님 그리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분들의 참여는 낯설었던 1박 2일의 여행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들어 주었다. 같이 했던 사람들은 예배 후 같이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며 하나님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함께 함이 인생의 본질이며 주어진 순간마다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이것이 그때 샬렘하우스에서 내가 배운 교훈이다. 그분은 그때도 같이 해 주셨다.

 

◇ 2016년 5월 21일 샬렘하우스 준공예식 후

 


김도일은 장신대 기독교교육학과 교수로 한국기독교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하며 다음 세대를 세우고, 가정교회마을연구소 공동소장으로 이 땅 위에 하나님나라를 확장시키는 일에 힘쓰고 있다. 이 지면을 통해 삶 속에 구체적으로 역사하시며 이끌어 오신 그분의 발자취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