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태어나서 이런저런 선택을 하다가 정신이 들어보니 여기네.”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 대니(스티브 연 역)가 내뱉는 한숨과 같은 대사의 한 줄이다. 이 말을 처음 들을 경우 얼핏 후련한 기분마저 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인공 대니가 이 말을 하기까지 겪어 온 폭주기관차 같았던 속도, 시간이 갈수록 비틀려만 가는 사건의 원치 않는 확장을 시청하게 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극찬에 가까운 호평을 받으며 각종 미국 드라마 시상식을 석권한 명작이라는 상투적 찬사를 넘어선 생각하는 만드는 뒷맛을 느끼는 것이다.

   《성난 사람들》의 원제는 ‘Beef’. 불평, 투덜거림이다. 2023년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공개되어 공개 직후부터 큰 화제를 모은 드라마의 제목이 ‘불평’인 이유가 제법 명확하고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이를 이야기 문장, 이른바 한 줄 요약으로 설명해보면 더 단순해진다. 미국 오렌지카운티에 삶의 터전을 꾸린 아시아계 남성과 여성의 끝 모르는 싸움을 그린 작품이다.

   잡무에 가까운 수리 업무를 하청 받아 일하는 남자 대니가 미국식 대형마트에 숯불화로를 환불하고 돌아오던 길에 고급 차의 경적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그 차를 추격한다. 대니와 위험천만한 추격전을 벌인 상대 차주는 에이미(엘리 윙), 식물을 투자 상품으로 대하는 갤러리를 운영 중인 사업가다. 한눈에 보이는 그녀의 외형은 누가 봐도 우아하고 완벽해 보인다. 그녀의 삶과 가족을 들여다보면 더욱 그렇다. 고급 주택가에서 고급 차를 몰고 쇼핑을 즐기는 모습, 유명세가 남다른 예술가 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남편과의 사이에 어린 딸을 둔 그녀의 겉면만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 역시 무능한 남편을 대신해 사업을 진행했지만, 여의치 않고 갤러리를 매각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의 진통이 상당한 상태였다.

   결국, 대니는 에이미의 차를 놓치고 만다. 허탕에 찬 울분을 억누를 길 없이 집에 돌아온 그의 인생 역시 에이미와 다르지 않다. 그는 미국 사회의 높은 벽에 부딪혀 일상이 좌절로 점철된 인생을 살고 있다. 마냥 선량해 보이지만 단지 그뿐인, 숙박업소 하나 운영하는 게 생의 전부였던 대니의 부모는 가짜 분유를 숙박업소에서 판매하다가 적발되어 사업을 접고 한국으로 건너가 삼촌밑에서 일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친동생은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패배자처럼 게임과 코인 투자, 한탕을 조장한 각종 유혹에 쉽게 넘어가 버린 상태에서 대니 혼자 집안을 어떻게든 꾸려나가려는 책임감에 숨 한 번 제대로 쉬기 어려워한다. 또 한편으로 대니와 에이미, 드라마의 두 축을 이루는 주인공에겐 쉽게 외면하기 어려운 어린 시절의 그늘도 존재한다. 단순 트라우마로만 취급하기 어려운 그늘의 기억이 현재 직면한 어려움의 그늘과 포개어져 있다. 그 중첩된 그늘의 감정이 알 수 없는 스트레스와 막막함과 결합하여 급기야 끝을 모르는 분노의 감정으로 치닫게 한다. 그리고, 여기, 이 분노의 기원에 드라마 《성난 사람들》은 한 가지 외면할 수 없는 구성 요소를 가미한다. 바로 이들이 이민자 2세대라는 사실이다.

   미국 사회 자체가 자유와 평등, 다양성의 평등을 제아무리 주장하고 제도화를 하더라도 무한경쟁이 노출된 사회 속에서 켜켜이 쌓여버린 인종차별의 그늘을 모두 씻어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한국계 미국인인 대니와 중국계 에이미. 두 주인공은 겉으로만 보면 미국에서 나고 자랐기에 미국식 문화와 정서에 뼛속 깊이 녹아들어 있다. 영어 구사 능력 역시 완벽에 가깝다. 하지만, 두 사람을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아시아계 특유의 감정이 폭탄의 뇌관처럼 꿈틀거리고 있다. 미국 상류층으로 진입하고 싶은 비주류의 욕망과 더불어 사회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견뎌 보려는,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정착에 관한 책임감이 폭탄의 뇌관이 되고 말았다.

   책임감은 긍정적 각성을 일으키는 감정 아니던가. 물론 그렇다. 하지만, 그 책임감을 온전하고 평안하게 지속하기에 완벽한 미국인도, 그렇다고 아시아의 정체성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닌 이민 2세대에게 주어진 책임감은 필연적으로 정체성 혼란과 함께한다. 그러다 보니 늘 실패에 관한 불안감, 욕망의 좌절, 켜켜이 쌓인 그늘의 지배를 지속하는 것이고, 그래도 삶을 제대로 꾸려보고픈 책임감이 충돌하면서 극단적 분노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대니와 에이미, 남녀 간의 다툼이란 언제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둘이 대립하고 다투는 가운데 터져 나오는 분노는 그 수위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극단적이다. 그렇게 둘은 죽음에 이를 정도의 위태로운 싸움과 복수를 전개하고, 결국 둘의 싸움은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시청자에게 한 치의 여유도 주지 않고, 숨 쉴 틈도 주지 않은 채.

   무엇보다 이 드라마에 주목할 수밖에 없게 하는 건 아시아계 이민자들, 더 나아가 정착하지 못했다는 불안감과 정착해야만 한다는 책임감이란 이중고를 품은 우리네 인생을 풍자한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이민자들에게만 쌓인 차별과 결핍에 관한 분노의 표출이 아니기에 더욱 무겁게 받아들여진다. 물리적인 이민자가 아니어도 현대인에겐 모두 정착하고 싶지만, 정착할 수 없는 떠돌이의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있다. 그것이 오늘의 우리 모습이기에 더 엄혹한 설득력으로 다가오는 게 아닐까. 불안의 은유를 세련되고 풍자적 방식으로 풀어낸 《성난 사람들》이 보편적 관심과 사랑을 받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주원규는 성공회대학교 대학원에서 구약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동서말씀교회를 섬기고 있다. 말씀해석과 관련된 것 외에 소설, 에세이, 건축 평론 등 다종 글쓰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열외인종 잔혹사』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아 등단했으며, 이후 tvN 《아르곤》, 영화 《크리스마스 캐럴》의 원작과 각색 작업을 했다. 지은 책으로 『망루』(2010, 문학의문학), 『땅의 예수, 하늘의 예수』(2010, 대장간), 『진보의 예수 보수의 예수』(2015, 바다출판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