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
◇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

 

   여기저기로 떠돌아다니는 말을 유언비어(流言蜚語)라 부른다. ‘헛소문’이 참뜻이다. 한자를 그대로 풀어보면 ‘흐르고 날아다니는 거짓말’이다. 흔히 루머, 입소문, 뜬소문, 가짜 뉴스,카더라 등으로 불린다. 근거가 없고 빠른 속도로 널리 퍼진다. 음모 모략 조작 선동 전략으로 쓰인다. 통쾌하고 시원한 내용이지만 후유증으로 피해자가 존재한다. 사회적 정치적 파장 또한 크다.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1755~1793)는 유언비어에 휘말려 단두대의 이슬이 됐다. 마리 왕비가 김 여사 핸드백 사건으로 이 땅에 다시 소환된 적이 있다. 그녀는 프랑스 루이 16세 부인으로 오스트리아 태생이다. 루이 16세가 황태자일 때 결혼했다. 물론 정략결혼이다. 프랑스 귀족들은 마리를 싫어했을 뿐 아니라 아예 무시했다. 교묘한 계략과 가짜 뉴스를 퍼트려 함정에 빠트렸다.

   다이아몬드 목걸이 스캔들이 있다. 이 목걸이는 루이 15세가 애첩 ‘뒤 바리’를 위해 주문했다가 인수를 안 했고, 그 후 마리 왕비마저도 구입을 거부했다. 라모르 백작부인이 이를 알고 로앙 추기경을 꼬드겼다. 마리가 목걸이를 타인 명의로 구입하기 원한다면서 대리구매를 유도했다. 추기경은 백작부인의 속임수에 넘어가 목걸이를 대리구매하는 사기를 당한다. 재판 결과 왕비는 결백이 밝혀졌지만, 체면과 위신은 크게 떨어지고 혁명의 빌미를 내주었다.

   마리는 활달하며 사교적이고 음악과 미술을 즐겼다. 반대로 루이 16세는 조용하고 사색을 좋아했다. 이들 부부의 불행은 프랑스의 재정 적자에서 비롯됐다. 프랑스 부르봉 왕가는 루이 14세와 15세가 전쟁을 치르면서 막대한 부채를 지게 됐다. 왕실은 매년 예산의 절반 이상을 빚 갚는데 쏟아부었다. 때문에 물가는 치솟고 프랑스 국민의 삶은 힘들어져 대혁명의 기운이 싹트게 된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나 먹지’라는 에피소드도 실은 마리가 한 말이 아니다. 루이 15세 왕비가 했던 말이다. 혁명에 나선 주동세력들은 군중들이 빵을 달라고 했을 때 마리가 내뱉은 말로 몰아붙이고 널리 유포시킨다. 결국 이 말은 대혁명의 활화산이 된다.

   또 르페르뒤센 등의 언론은 마리를 암캐, 창녀, 스파이 등으로 음해 보도해 혁명을 확산시킨다. 마리가 8살 아들과 근친상간했다는 가짜 뉴스마저 조작한다. 분노한 혁명군은 마리를 혁명재판에 올렸다. 마리는 인쇄공, 목수, 가발 업자 등으로 구성된 시민 배심원들의 만장일치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왕비는 음해와 유언비어로 희생됐지만, 역사가들의 연구로 마리의 악성 평판의 누명은 벗겨졌다. 유언비어는 한때 위세를 떨치지만, 결코 영원하지 않다. 정의롭지가 않아서 그렇다. 음모와 카더라에 희생되거나 몰락한 유명 인사들을 생각나게 하는 사건의 중심엔 항상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있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