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난쏘공』이 읽히지 않는 시대를 위해

◇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한국 현대문학의 대표적인 고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의 판매 부수가 150만 부를 돌파했다. 얼마 전 150만 부 발행 및 2022년 12월 25일 타계한 작가의 일주기에 즈음해 『난쏘공』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지난해 성탄절 세상을 떠난 조세희 작가는 2008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출판 30주년에 즈음한 <한겨레> 인터뷰에서 책을 쓸 당시엔 30년 뒤에도 읽힐 거라곤 상상 못 했다. 앞으로 또 얼마나 오래 읽힐지 알 수 없지만, 세상이 지금 상태로 가면 깜깜하다는 것, 그래서 미래 아이들이 여전히 이 책을 읽으며 눈물지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내 걱정” 이라고 고백했다.

   1978년 출간된 이 연작소설은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재개발로 인해 행복동에서 쫓겨나는 난장이 가족의 삶과 좌절을 통해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불평등, 거악의 부조리, 복수의 병리적 세태를 환기시킨다.

   문학평론가 김명인은 조 작가의 별세 직후 SNS에 올린 글에서 “『난쏘공』엔 노동자의 삶과 생각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삶과 생각을 곁에서 바라보고 같이 생각하는 작가의 아픔과 생각도 같이 들어있고, 그 두 삶과 생각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작렬하는 어떤 것이 들어있다. 분노와 부끄러움이 그것이다… 『난쏘공』은 1970년대의 한 노동가족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그 이야기를 고통스럽게 전하고 있는 한 작가의 분노와 부끄러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라고 평가했다.

 

   『난쏘공』이 부끄러움에 대한 이야기란 사실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더욱 또렷이 보였다. 부끄러움을 동력으로 쓰는 사람은 결국 그 부끄러움 때문에 쓰지 못했다. ‘시대가 바뀌었다’며 돌변한 언어들을 부끄러워하며 그는 오랫동안 세상에 글을 내보내지 않았다.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말과 글이 목청을 키우는 세상에서 부끄러움을 자기 것으로 알고 살아가는 작가는 스스로의 말과 글을 줄이고, 깎으며, 침묵했다. “나는 작가로서가 아니라 이 땅에 사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그동안 우리가 지어 온 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라고 그는 마지막 책(『침묵의 뿌리』) 첫머리에 썼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더는 책을 내지 않았다. 대신 그는 카메라로 썼다. 『난쏘공』의 인세를 모아 산 사진기로 그는 글을 쓰지 않을 때도 난장이들을 썼다. 목격담들이 이어졌다. 탄압에 저항하며 목숨을 끊은 노동 열사의 추모 시위에서, 벼랑 끝으로 몰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 사수 집회에서, 미군 기지 확장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피투성이 논밭에서, 자식들 묘비를 쓰다듬으며 통곡하는 광주민주항쟁 유족들 곁에서 그를 봤다는 이야기가 낯선 소문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난쏘공』이 300쇄를 찍고 100만 부가 팔리는 동안에도 난장이는 대를 이어 번성했다. “책상 앞에 앉아 싼 임금으로 기계를 돌릴 방법만 생각”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했던 그때나, 노동시간을 주 69시간까지 늘리는 것이 ‘개혁’이 된 지금이나, 난장이들의 삶은 나아지는 대신 불안정의 정도를 다투며 세분화되고 있다. 산업이 차수를 더해 네 번째 혁명을 하고, 거대한 세계가 손바닥 안에서 스마트하게 압축되는 사이, ‘공정’과 ‘능력’이란 이름의 세련된 불평등에도 끼지 못하는 가난은 혐오의 대상이 됐다.

 

“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만 사는 땅은 죽은 땅입니다.”(p.117)

 

   『난쏘공』이 세상에 나온(1978년) 지 46년이 지났음에도, 150만 부가 팔렸음에도 세상은 더 나빠졌다. ‘무엇이 달라졌는가?’라는 질문은 그래서 『난쏘공』을 읽고 난 뒤 수많은 독자에게 주어지는 피할 수 없는 숙제다. 우리 스스로가 끊임없이 저 지평선 끝에 만나는 듯한 기찻길의 꼭짓점 같은 욕망으로 치닫고 있고, 개개인을 넘어선 자본과 국가는 그 욕망을 보다 거시적 차원에서 추진한다. 닿고 나면 더 큰 것을 갈망하게 되는 욕망과 그 욕망에 기반해서 세워진 사회 질서는 예나 지금이나 숨 막힐 정도로 견고하기만 하다.

   1970년대의 낙원구 행복동과 21세기의 대한민국은 모두 동일한 맥락 선상에 서 있다. 재개발을 통한 거대한 이권이라는 욕망을 자극하는 탐욕으로부터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2008년 11월 14일, 서울 교보생명빌딩에서 난쏘공 출간 30주년을 맞아 그의 문학세계를 되짚어보는 기념문집 『침묵과 사랑』 헌정식 및 낭독회가 끝나갈 무렵,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사람들을 향해 마치 유언처럼, 예언처럼 이렇게 외쳤다.

 

“절대 절망에 빠지지 마십시오. 절대 냉소주의에 빠지지 마십시오. 후배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을 피하지 마십시오. 현대 사회에서 모든 자본들은 사람들에게 바보가 되라고 강요합니다. 냉소주의는 사람의 기운을 빼앗아 갑니다. 절대 절망에 빠지지 마십시오. 희망을 가지고 사십시오. 전 여러분 세대에 많은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싸우지 않는다면 죽어서 지하에 있다가도 제가 싸우러 나올 것이다.”

 

   다가오는 봄, 『난쏘공』의 난장이가 꿈꿨듯이 “모두에게 할 일을 주고, 일한 대가로 먹고 입고, 누구나 다 자식을 공부시키며 이웃을 사랑하는”, “지나친 부의 축적을 사랑의 상실로 공인하고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네 집에 내리는 햇빛을 가려버리고, 바람도 막아버리고, 전깃줄도 잘라버리고, 수도선도 끊어버리는”, “사랑으로 비를 내리게 하고, 사랑으로 평형을 이루고, 사랑으로 바람을 불러 작은 미나리아재비꽃 줄기에까지 머물게”하는 그런 시대, “더 이상 『난쏘공』이 읽히지 않는” 시대를 위해 한국 사회와 교회가 부디 부끄러움을 품고 『난쏘공』 다시 펼쳐 함께 읽기를….


김성수는 한국 사회와 교회가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한 권의 책을 집어 들고 ‘함께 읽기’로, 그 함께 읽기가 ‘함께 다르게 살기’로 이어지는 가능성을 품고 시작된 작은 독서공동체 호모북커스(homo bookers, “책 읽는 존재로서의 인간”)대표 목사이자, 서울 서촌에 자리 잡은 아담한 한옥 공유 서재 호모북커스를 13년째 꾸려가며 한 권의 책이 이어주는 다양한 만남과 인연 그리고 우정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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